‘채 상병 사건’ 곳곳에 대통령실 개입 흔적... 공수처 수사, VIP 향할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국방부·해병대 관계자들을 잇따라 소환하며 수사 속도를 높이고 있다. 향후 공수처 수사의 최대 쟁점은 대통령실까지 겨냥하느냐가 될 전망이다. 해병대 수사단의 채 상병 사망 사건 초동 수사부터 국방부의 수사기록 이첩 보류, 회수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실 개입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지난 10일 이윤세 해병대 공보정훈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고 12일 밝혔다. 이 실장은 지난해 7월30일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채 상병 사망 사건 초동 수사 결과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게 최초 보고한 회의에 참석했다. 공수처는 이 실장을 상대로 당시 회의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등을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공수처는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 등 국방부 관계자들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중장) 등 해병대 관계자들을 잇따라 불러 조사했다. 조만간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과 이 전 장관도 불러 조사할 전망이다.
관심사는 공수처가 국방부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할지, 대통령실까지 뻗어 나갈지 여부다. 대통령실은 해병대 수사단의 채 상병 사망 사건 초동 수사에 외압을 가한 당사자로 일찌감치 지목된 상태다. 박 대령은 지난해 7월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초동 수사 결과에 관해 김 사령관이 자신에게 “국방부에서 경찰 인계 서류에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빼라고 한다. 대통령실 회의에서 VIP(대통령)가 격노하면서 (국방부)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은 국방부의 채 상병 사망 수사기록 이첩 보류와 회수 국면에도 등장했다.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에 파견됐던 김형래 대령은 지난해 7월30일 김 사령관과 통화한 뒤 해병대 수사단으로부터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결과 언론 브리핑 자료를 받았다. 이튿날인 7월31일 이 전 장관은 돌연 수사기록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했고 언론 브리핑도 취소시켰다. 그날 이 전 장관이 대통령실로부터 전화를 받은 정황도 포착됐다.
해병대 수사단이 수사기록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직후 국방부가 회수한 지난해 8월2일에도 대통령실과 국방부·해병대 관계자 사이에 전화통화가 빈번하게 오갔다. 경찰에서 파견된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이 국가수사본부 간부와 통화했고, 그의 상관인 이시원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이 유 관리관과 통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임종득 국가안보실 2차장은 김 사령관과 통화했고, 국가안보실 파견 김 대령도 김화동 해병대 비서실장과 통화했다.
이 때문에 대통령실 관계자 여럿이 고발됐지만 공수처는 아직 이들을 상대로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 개입 의혹을 제대로 규명하려면 대통령실 압수수색 또는 임의제출을 통해 통화내역, 보고 문건 등을 확보하는 게 일반적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들을 불러 이 사건에 관해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를 했는지도 조사해야 한다. 특히 수사 외압 의혹의 진원지인 ‘VIP 격노설’을 확인하려면 어떤 방식으로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조사도 해야 한다.
공수처가 실제로 현직 대통령과 대통령실까지 수사 범위를 확대하면 정치적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그렇다고 공수처 수사가 대통령실을 비껴간다면 ‘사건의 본질에 눈을 감는다’는 비판을 자초하게 된다. 이 경우 ‘채 상병 특별검사법’ 추진이 더 큰 명분과 동력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