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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정치’의 네 장면... 여의도라는 큰강을 건너기엔 약했다

by 게으른 배트맨 2024.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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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정치’의 네 장면... 여의도라는 큰강을 건너기엔 약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이 지난 26일 대구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에서 박 전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국민의힘 제공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이 지난 26일 대구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에서 박 전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국민의힘 제공

 

 

4·10 총선을 100여일 앞두고 한동훈 법무장관이 집권여당 구원투수로 왔을 때, 앞에는 두 가지 숙명이 놓여 있었다. 윤석열 정권 ‘호위무사’라는 과제와 ‘한동훈 정치’를 여는 욕망이다. 후자는 잠룡 증명이라 하겠다. 모두 총선 승리와 불가분이지만, 색깔은 달랐다. 윤석열 대통령에겐 여의도의 친윤 객토라는 ‘+α’가 승리만큼 절실했다. 윤석열의 승리여야 했기 때문이다. 호위무사는 어디까지나 대리인으로 끝나야 했다.

 

 

 

 

 

 

첫 착점은 유려하고 똑똑했다. 한 비상대책위원장은 유권자를 향해 “동료 시민”이라 했고,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국민의힘 인사들의 낡은 상상에선 결코 나올 수 없는 단어였고, 저작권을 독점한 듯했던 더불어민주당으로선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불출마는 정치 욕심을 내려놓은 희생 이미지와 함께 질투심 강한 현실 권력의 의심을 피하는 대리인의 알리바이를 제공했다.

 

“싸울 때 돋보이는 정치인이다”(여권 관계자). 보수가 환호할 만했다. 과거 유시민·이해찬 등 실력·팬덤을 갖춘 야권의 유능한 ‘쌈꾼’들에게 판판이 깨질 때 울분을 토하던 그들 입장에선 전에 없던 예리한 보검을 하나 얻은 격이었다. 한동훈 정치의 첫 장면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운명의 시험이 그리 간단할 리 없다. 두 번째 장면이다. 1월23일 눈을 맞으며 30분을 기다린 한 위원장은 90도 폴더 인사로 윤 대통령을 맞았다. 대통령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이틀 전 윤 대통령은 밀사를 보내 그에게 “나가라” 했다. 한 위원장은 그 사실을 민심에 고자질하듯 선제 공개했다.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수수가 불러온 사달이었다. 십수년 관계가 한 달 남짓 만에 끝장날 것 같았다. 그래서 “약속대련”이란 말도 나왔다. 실상 두 권력의 충돌은 늘 약속대련일 수밖에 없다. 적어도 총선까지는 그렇게 포장되어야 했다.

 

총선을 20여일 남기고 다시 마주 섰다. 한 위원장은 대통령실을 향해 ‘황상무 시민사회수석 사퇴, 이종섭 호주대사 조기 귀국’을 요구했다. 친윤들조차 그의 손을 들었다. 대통령실은 당황했다. 사흘 만에 나온 새벽 황 수석 경질 공지에선 복잡한 감정이 읽혔다. 당혹과 굴욕감이다. 하지만 ‘런종섭 반란’을 문제 삼을 힘은 없어 보였다. 용산 주변에선 ‘배반’이란 단어가 떠돈다. 하지만 권력이 바르고 강인하면 배반이 머리를 내밀 틈이 없다.

 

 

jtbc 뉴스 캡쳐
jtbc 뉴스 캡쳐

 

 

 

세 번째 장면은 가장 의문으로 남은 한동훈 정치의 내용이다. 한 위원장은 19일 중앙선대위 발대식에서 “지면 종북세력이 나라의 진정한 주류를 장악하게 되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여의도 문법을 조소했지만 정작 총선 전략은 ‘색깔’이었다. 어떤 면에서 한동훈 정치는 기존보다 더 ‘여의도’스러웠다.

 

 

 

 

 

 

“제가 김건희 여사 사과를 얘기한 적이 있던가요.” 한 위원장은 주로 되물었다. 기승전 ‘이재명은요’ ‘더불어민주당은요’ 식이었다. 남을 걸어 자신을 지켰다. 곤란한 현안엔 “우리 당 입장은 명확하다”는 식으로 피해갔다. 짧고 명쾌한 듯했지만, 자세히 보면 법정에서 방어하듯 교묘하게 골대를 옮겨놓는 것에 불과했다. 26일엔 자신이 6년 전 30년형을 구형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도 찾아갔다. “좋은 말씀을 들었다”고 했다. 국민의힘이 어렵사리 건넜던 탄핵의 강을 그렇게 되건넜다. 같은 날 유승민 전 의원의 총선 역할론에 대해선 “특별히 생각해본 적 없다”고 잘랐다.

 

 

이재명 구속영장 기각 관련 입장 밝히는 한동훈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9월 27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재명 구속영장 기각 관련 입장 밝히는 한동훈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9월 27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마지막 장면은 미래형이다. 운명의 정점은 총선 후가 될 것이다. 보수는 ‘윤석열의 실패’를 받아들이는 듯하다. 총선 패배를 윤석열의 실패로 매김하지, 한동훈 정치에 부채를 넘길 생각은 없어 보인다. 2년간 쌓인 실정의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혹 이긴다면 호위무사만 하고 홀홀히 떠나는 애초 약속대련의 해피엔딩 시나리오는 더 어려울 게다. 설령 그런다 해도 바람이 그냥 두지 않는다.

 

하지만 집이 허물어졌는데 서까래라고 온전할까. 한때 반짝하던 잠룡 증명은 신기루처럼 흐려졌다. 한 위원장은 용산을 향해 눈 흘기며 구조를 탓할지 모르겠다. 맞다. 처음부터 그의 포르투나(운명의 여신의 변덕)는 윤 대통령이었다. 야당이 아니었다. 얼음장 같은 정권심판론을 어느 날 갑자기 ‘야당심판’으로 돌릴 수는 없다. 정권심판의 원인을 뚫어야 했다. 하지만 한동훈 정치의 신선함은 딱 ‘동료 시민’에서 끝났다. 지난 세 장면이 보여준다. 그 점에서 한동훈 정치의 실패다. ‘싸울 때 돋보이는 정치인’의 비르투(자질)는 용산을 향해서도 제대로 작동했어야 한다. 반사이익이 아닌 자기 정치의 동력도 증명해야 했다. 여의도라는 큰 강을 건너기엔 ‘한동훈 정치’는 내용도 결기도 약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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