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반도체가 민생?"... 제발 공부 좀
지난 23일 대통령님이 주재한 '제2차 경제이슈점검회의' 관련 보도자료를 봤습니다. 반도체 산업이 그날 회의의 주제였고, "정부가 금융, 인프라, 연구개발(R&D)은 물론 중소·중견기업 지원까지 아우르는 26조 원 규모의 '반도체 산업 종합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했다"라는 게 핵심 내용이었습니다.
발표 내용을 요약하면 전체 26조 원 중에서 "17조 원 규모의 '반도체 금융지원 프로그램'"은 반도체 업체에 저리로 대출해 주겠다는 거고, "1조 원 규모의 '반도체 생태계 펀드' 조성"은 기존 3000억 원 규모로 운영되던 걸 규모를 키운 겁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도로·용수·전력 인프라 지원에 2조 5000억 원을, 연구개발(R&D)과 인력 양성을 위해서는 기존 3조 원에서 5조 원으로 금액을 늘렸습니다.
여기에 "올해 일몰되는 투자세액공제도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투자에 차질이 없도록 연장할 방침"이라고도 했습니다. 올해 말로 예정된 일몰을 연장하려면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는 건 아시죠? 이런 경우엔 '투자세액공제도 연장할 수 있도록 국회와 긴밀히 상의할 방침'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더 나을 뻔했습니다.
대통령님은 "반도체 투자세액공제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부가 약자 복지 비용을 빼앗아 대기업을 지원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전혀 아니다"라며 "세제지원으로 기업 투자가 확대되고 수익이 늘어나면 국민은 양질의 일자리를 더 많이 누리게 되어 민생이 살아나고 세수도 증가하기 때문에 '반도체가 곧 민생'"이라고도 했습니다. 이 말을 받아서 많은 언론이 "반도체가 곧 민생"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반도체가 곧 민생"이라는 말, 개인적으로 전 반도체 생활 30년 만에 처음 듣는 이야깁니다. 대통령님의 말대로 반도체 기업의 세금을 깎아주고 금융지원을 해주면 국민이 "양질의 일자리를 더 많이 누리게 되어 민생이 살아나"게 될까요?
반도체가 고용과 여타 산업에 미치는 영향
2023년 전체 반도체 수출액은 1310억 달러로, 전체 수출의 20.7%를 차지했습니다. 2021년 25%에서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부동의 수출 1위 산업인 건 분명합니다. 전체 설비투자 중 반도체 관련 설비투자 비중은 2021년 기준으로 24.1%입니다.
산업부가 집계한 2024년 국내 10대 제조업 설비투자 목표를 봐도 전체 110조 6000억 원 중에 반도체가 60조 4000억 원으로 55%를 차지합니다. 자동차와 디스플레이는 각각 16조 6000억 원과 10조 5000억 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렇게 다른 산업에 비해 규모가 크고 또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으니 반도체 산업과 관련된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늘어날까요? 확인해 보죠. 취업유발 계수라는 게 있습니다. 특정 산업 부문에 10억 원을 새로 투자할 경우 해당 산업을 포함해 모든 산업에서 직간접적으로 유발되는 취업자의 수인데, 산업별로 많이 다릅니다.
문재인 정부가 청와대에 설치했던 일자리 상황판에는 '산업별 취업유발계수'가 상위 10개, 하위 10개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일자리 확대를 위해 어떤 산업에 주목해야 할 지표로 만들어 놨던 거죠.
2019년 기준으로 음식점·숙박서비스, 도소매·상품중개서비스, 교육서비스 등이 상위 10개 산업 안에 들어 있습니다. 하위 10개 산업에는 부동산서비스 등과 함께 컴퓨터·전자·광학기기, 전기장비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취업유발계수가 가장 높은 농수산식품은 26.1명, 가장 낮은 석탄·석유제품은 1.3명으로 스무 배 가까이 차이가 납니다. 그럼 반도체 산업만 따로 떼어 놓으면 얼마나 될까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작년에 내놓은 "최근 반도체경기 흐름과 거시경제적 영향"이라는 보고서에는 반도체가 고용이나 다른 산업에 대한 파급 효과에 대해 조사해 놓은 게 있습니다. 여기에 반도체산업의 취업유발계수가 나옵니다. 본문을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자본집약적인 반도체산업은 취업유발계수가 2.1로서 전 산업(10.1)의 1/5, 전체 제조업(6.2)의 1/3에 불과함."
반도체산업의 수요 변화가 여타 산업의 부가가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아래와 같이 설명합니다.
"반도체 수요로 여타 산업에서 유발되는 부가가치는 0.67의 13.1%인 0.09로서, 자동차 0.49(69.2%), 선박 0.45(68.4%)에 비해 크게 낮은 바, 반도체 수요가 여타 산업으로 파급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작음."
보고서는 "반도체 수요가 크게 감소할 경우 국내총생산(GDP)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 있겠으나, 여타 산업이나 고용에 미치는 파급은 비교적 작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요약해 놓았습니다. 반도체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서 민생이 살아날 거란 대통령님의 논리와 정반대의 분석입니다.
실제로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는 인력의 수는 18만 명 수준으로 전체 취업자 2800만 명의 1%도 채 안 되고, 300대 대기업 취업자 300만 명의 6% 수준입니다.
2023년 6월 말 기준 주요 대기업 직원 수를 기업별로 나열해 보면 삼성전자가 12만 4070명으로 가장 많지만, 삼성전자는 반도체 외에 가전과 통신 사업도 함께 하는 걸 감안해야 합니다. 그 뒤로는 현대차(7만 1520명), 기아차(3만 5438명), LG전자(3만 4198명) 순으로 인원이 많습니다.
반도체 사업만 하고 있는 SK하이닉스의 경우 3만 3217명으로 다섯 번째입니다. 반도체 팹 하나 짓는데 수십 조원씩 한다고는 하지만 투자액 대비 채용 인원이 적다는 게 여기서도 확인됩니다.
반도체가 곧 양질의 일자리인가?
그래도 우리나라 반도체 회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 중심으로 첨단 반도체 소부장 회사들이 많으니, 양질의 일자리는 맞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반도체 특별과외 첫 번째 기사에서 자세히 소개한 바와 같이 반도체를 생산하는 공장은 유독물질을 많이 사용하는 아주 위험한 곳인 데다, 1년 365일 잠시도 운영을 멈출 수 없어 24시간 교대 근무를 해야 하는 힘든 일터입니다.
2019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10년간의 역학조사 이후 '반도체 제조공정 근로자에 대한 건강 실태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반도체 회사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의 경우 백혈병에 걸릴 위험성은 1.55배 높았고, 이 중 웨이퍼 팹 안에서 반도체 칩을 직접 다루는 20~24살 여성 노동자의 경우는 2.74배로 더 높았습니다. 백혈병뿐만 아니라 위암이나 유방암 그리고 신장암 그리고 일부 희귀암도 발생 위험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도체 공장에서 유발된 질병은 보고서 안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고 황유미씨 이야기는 영화로도 소개됐으니 대통령님도 이름 정도는 들어 봤을 겁니다. 오늘은 또 다른 황유미씨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지난 3월 22일, 근로복지공단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7~10년 일했던 세 명의 반도체 여성노동자의 건강손상자녀에 대해 산재 인정을 통보했습니다. 엄마가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바람에 태아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쳤다는 겁니다.
세 명 모두 현장에서 반도체를 직접 만들던 작업자였습니다. 김혜주(이하 모두 가명)님은 임신 상태에서 열심히 현상액을 부었고, 김은숙님은 열심히 에폭시를 가열하였고, 김성화님은 손발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웨이퍼를 날랐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한 그들의 자녀는 신장이 없거나 대장이 움직이지 않는 등의 장애를 갖고 태어났습니다.
이번 산재 승인은 반도체 공장 여성 노동자의 자녀가 앓는 선천성 질환이 산업재해로 인정된 첫 사례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선천성 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자녀를 두고 원인을 몰라 혼자 고민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양질의 일자리는 월급이 많은 일자리가 아니라, 건강하게 일하고, 일한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에 필요한 것
대통령님이 반도체가 우리나라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서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도체가 국가안보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우리 반도체의 경쟁력을 키우는 게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이유들로 반도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면 동의는 하지 않더라도 틀렸다고 말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반도체가 곧 민생이기 때문에 지원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명백히 틀린 말입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반도체가 곧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하는 게 아닐 뿐더러, 거액을 투자한 만큼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지도 못하고, 여타 산업에 대한 파급 효과도 적습니다. 13조 원의 예산으로 전국민에게 25만 원씩 민생회복지원금을 주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예산 부족과 물가 상승을 이유로 거부하면서, 대기업에 지원하겠다는 26조 원은 어떻게 그리 쉽게 마련이 되는지요?
끝으로 정부 연구기관의 보고서 하나를 더 보죠. 지난 5월 16일, KDI는 2024년 상반기 경제전망을 내놓았습니다. KDI의 요약은 이렇습니다.
"수출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높은 증가세를 보이며 경기 회복세를 주도할 전망"이고, "경상수지는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교역조건(수입가격 대비 수출가격)도 개선되면서 흑자폭이 확대될 전망"이며, "설비투자는 2024년에 반도체경기 상승으로 2023년(0.5%)보다 높은 2.2% 증가"한다는 긍정적인 전망입니다.
하지만 "민간소비는 고금리 기조의 영향으로 2023년에 이어 2024년에도 1.8% 증가하는 데" 그칠 전망이며, "생산가능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가운데 내수 부진이 반영되며 취업자 수 증가폭은 2023년 33만 명에서 2024년 24만 명, 2025년 17만 명으로 점차 축소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도 함께 있습니다.
올해 수출과 투자가 증가하면서 경기는 회복될 테지만, 내수부진이 이어지고 취업자 증가폭도 축소될 거라는 겁니다.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지금 정부가 한정된 예산 안에서 지원해야 할 부분은 반도체가 아니라 내수 진작이며, 내수 진작이 곧 민생입니다. 반도체는 다른 산업에 비해 내수에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대통령님이 대기업 세금 깎아 주기 위해 한 "반도체가 곧 민생"이라는 말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