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는 왜 기회조차 없었나?... 윤 대통령 기자회견 MBC 질문배제
윤석열 대통령 기자회견이 무려 1년 9개월 만에 이뤄졌지만 '알맹이'는 쏙 빠졌습니다. 주요 쟁점과 관련해 대통령 답변은 지금까지 대통령실이 내놓았던 입장을 녹음기 틀 듯 번복하는 수준이었고, 기자들 질문도 날이 무뎌진 창 같았습니다. 모두 20차례 질문 기회가 있었지만, MBC 등 일부 언론사는 한 차례도 질문하지 못한 반면, 조선미디어(조선일보, TV조선) 등 특정 언론사 그룹에 두 차례 기회가 주어지는 등 편향적인 진행도 문제였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혐의, 채상병 특검법 등과 관련해 대통령이 어떤 입장을 내보일지 여론의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그만큼 기자들의 질문 내용도 중요했습니다. 대통령실이 채상병 특검법은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며 거부권 행사 입장을 공식 시사했고,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사와 관련해서도 비슷한 견해를 밝혔던 만큼, 그 이상 답변을 끌어낼 질문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관련 내용에 대한 질문은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수준이었고, 윤석열 대통령의 답변에서도 '그 이상'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무딘 기자 질문에 기존 입장만 재확인한 윤석열 대통령
먼저 김건희 명품백 수수 의혹과 관련된 기자 질문은 이렇습니다.
"검찰이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과 관련해서 전담수사팀을 구성하고 조속히 수사를 마무리하겠다 이런 의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께서는 올 초에 한 방송사와의 대담에서 어느 정도 여사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신 바가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관심도는 여전히 높고 또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대통령님의 의견 듣고 싶습니다."
이 질문을 받은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들께 걱정 끼쳐드린 부분에 대해서 사과를 드리고 있다"면서 처음으로 공식 사과를 했지만, 이후 발언은 김건희 특검법 거부권 입장 등을 재차 확인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취재기자인 제 입장에선 이 질문에서 더 나아가 "검찰이 수개월간 이 사건 수사를 미루고 있다가, 뒤늦게 본격 수사에 착수하면서, 대통령실과의 약속 대련 이야기가 있는데, 이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을 듣고 싶었고 "검찰이 김건희 여사 출석을 요구하면 응하도록 할 생각인지"도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질문 자체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입장 역시 당연히 듣지 못했습니다.
채상병 특검법과 관련한 질문도 나왔지만, 특검법 거부 명분과 의혹에 대해 묻는 수준이었습니다.
"특검법을 거부하실 것인지, 거부하신다면 (특검 찬성) 이런 여론에도 불구하고 거부해야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 부탁드리고요. 그다음에 이 사건 같은 경우에는 대통령실 외압 의혹과 대통령님께서 국방부 수사 결과에 대해서 질책을 했다는 의혹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입장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안타깝고 슬픈 일"이라면서도 수사기관에서 진상을 규명해야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아울러 "봐주기 의혹이 있다, 납득이 안된다고 하면 그때 특검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기존 대통령실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의 답변이었습니다. 현재 채상병 의혹 사건의 핵심은 윤석열 대통령이 수사에 관여했는지 여부입니다.
제가 질문 기회를 받았다면 "채상병 사건을 경찰로 넘기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온 7월 31일 박정훈 대령이 '대통령 격노'를 전해들었다고 주장하는데, 당시 몹시 격노하시어 국방부 등 관계자에게 의견을 표명하신 사실이 있는지"를 물어봤을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총선 이후 뒤늦게 강조하고 있는 '협치'와 관련해선 정말 원론적인 답변을 내기 딱 좋은 질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관련된 기자의 질문은 이렇습니다.
"채상병 특검법, 방금 말씀하신 채상병 특검법 등 주요 현안들을 두고 대치 정국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협치 강화를 위해 어떤 실질적인 방안을 생각하고 계신 게 있는지 궁금하고요."
대통령이 협치 강화를 외치면서도 채상병 특검법 등에 대해선 거부권 행사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또다시 행사한다면 '협치'가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예상 가능한 일입니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와 협치는 어떤 기준을 들이대도 양립 불가능한데, 대통령의 협치는 말뿐인 협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거부권 정치를 철회할 생각은 없는가?"라고 물었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대통령실을 출입하지 않는 기자가 이렇게 지적하는 것이 대통령실 출입기자 입장에선 불편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실 상황도 모르면서 답답하면 네가 해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이렇게 주제넘게 지적하는 까닭은 이날 윤 대통령의 답변은 대통령실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친, 명백한 결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날 기자회견에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선거방송심의위원회의 정치심의', '일본 라인(네이버) 사태'와 관련된 내용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정치심의 논란은 대한민국 헌법 제21조(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를 정면 부정하는 사태이고, 라인 사태는 국내 IT 대기업의 자산과 기술이 일본에 송두리째 넘어갈 수 있는 중대한 문제로, 대통령의 입장과 생각이 궁금했지만,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정치심의 논란과 관련해, 기자들이 질문하지 않았다는 것은 언론인들이 깊이 성찰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MBC 외면한 대통령실... 조선, 연합, 머투그룹은 두 차례 질문 기회
편향적인 기자회견 진행도 문제입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수많은 기자들이 손을 들었지만, 일부 매체만 질문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국내 언론 중에선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비롯해, KBS, SBS, 한국일보, 연합뉴스, 연합뉴스TV, TV조선, 매일경제, 한국경제, 서울경제, 영남일보, 아이뉴스24, 머니투데이, 뉴시스, 한겨레 등 16개 언론사만이 질문 기회를 얻었습니다. 같은 계열사끼리 묶으면 조선일보와 TV조선 등 조선미디어에 2차례, 연합미디어그룹(연합뉴스, 연합뉴스TV) 2차례, 머니투데이그룹(머니투데이, 뉴시스) 두 차례 주어졌습니다.
'바이든-날리면' 사태를 기점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원색적으로 비판했던 MBC는 지상파 3사 가운데 유일하게 질문 기회를 얻지 못했고, 대표적인 인터넷언론사인 <오마이뉴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울러 외교·안보 분야에선 외신(로이터, AFP, BBC, 닛케이신문)만 질문 기회를 준 것도, 국내 언론사 '홀대'로 볼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