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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은 이때 죽었어야 했다. 이재명 의사

by 게으른 배트맨 2023.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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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은 이때 죽었어야 했다. 이재명 의사

게으른 배트맨입니다.

 

배트맨 날다

인생의 전환점을 찾아..... 한가지라도 바지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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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을사조약체결, 고종의 강제퇴위주도, 정미 7 조약, 기유각서, 한일병합조약체결 등 악질적인 친일 행각으로 인하여 국내에서는 친일 반민족행위자, 매국노라 하면 바로 이완용이 연상될 정도로 매국노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을 확고히 했다. 

요즘 정국이 홈범도장군 흉상 철거, 이전. 이승만 기념관건립 등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왜 나는 '이완용'이 떠올랐을까?

 

 

이완용
이완용

 

이완용은 이때 죽었어야 했다

두 달에 가까운 이토 추모 행사가 끝나갈 무렵 이번에는 벨기에 황제 레오폴 2세의 별세를 애도하는 추도식이 벨기에 영사관 주최로 종현 교회당(명동 성당)에서 열렸습니다. (레오폴 2세는 벨기에보다 10배나 넓은 아프리카의 콩고를 병탄 하여 "콩고 자유국"의 국왕이 되었던 인물이며, 벨기에의 문명 전파와 교화가 얼마나 철저했던지 한 세대 만에 콩고 인구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영국의 탐험가 스탠리(Henry Morton Stanley, 1841~1904년)는 레오폴 2세가 콩고를 차지하는 데 일등공신이었습니다.)

 

피습을 두려워하여 대중 앞에 나서기 꺼려했으나 이 행사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던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은 12월 22일의 추모 행사가 끝나자마자 오전 11시 30분경 경호대를 앞뒤에 거느리고는 차부(車夫) 박원문(朴元文)이 끄는 인력거에 올라 황망히 귀가 길에 올랐습니다. 인력거가 교회당 문을 막 나서는 찰나 어디선가 괴한이 나타났습니다. 평양 출신의 스물두 살(나이에 관해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기소장에 적힌 것을 따랐습니다) 청년 이재명(李在明)이었습니다.

이재명은 몸에 단도와 육혈포를 지니고 있었으며, 그는 익숙한 단도를 든 가운데 손으로 차부 박원문을 한 칼에 쓰러뜨렸습니다. 그리고는 겁에 질린 51세의 이완용에게 달려들어 그 단도로 몇 군데를 찔렀습니다. 인력거 아래로 굴러 떨어진 이완용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곧이어 달려온 경호원들은 이재명을 포박하는 한편 대검으로 등을 찔렀습니다.

이완용과 이재명이 흘린 피로 그 일대는 유혈이 낭자해졌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이재명이 "대한 만세"를 외쳤다는 얘기도 있지만 확실치는 않습니다.

차부 박원문은 현장에서 즉사했으며, 이완용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이완용 대신 애꿎게 박원문이 죽은 것이었습니다.

 

이재명이 재판 과정에서 "무지 무능한 저 가련한 노동자를 일부러 죽이려고 했겠는가"라고 하면서 박원문의 죽음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지 않았다는 것을 당시의 언론 보도나 재판 기록에서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박노자, '정당한 폭력'은 정당한가, <한겨레 21> 2007년 4월 13일 자) 

 

 

대한매일신보
대한매일신보-이재명 의사의 거사를 보도

 

대한독립청년단

이재명이 현장에서 체포된 직후부터 검거 열풍이 휘몰아쳐 수십 명이 연행되었는데 여기에 대한의원 학감 지석영과 부속의 학교 학생 대표 손수경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사건에 가담한 오복원(吳復元)과 김용문(金龍文)이 대한의원 부속의학교 학생이었기 때문일 것이며, 더욱이 손수경은 이들과 고향(평양)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지석영과 손수경은 혐의가 없어 그다음 날 방면되었습니다. 또 체포된 사람으로 천도교 지도자 양한묵(梁漢默, 1862~1919년, 3·1 운동 33인 대표 중 유일하게 옥사)도 있었습니다. 이 사건 가담자 중 오복원과 김용문 등 천도교도가 여럿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양한묵은 넉 달 가까이 구금되었지만 기소되지는 않았습니다. 양한묵의 신문조서(訊問調書)에는 손병희, 오세창, 권동진 등과 함께 전의(典醫) 박종환(제59회)의 이름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재명의 재판 과정

이재명은 이완용에 대한 살인 미수와 박원문 살해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서울지방재판소의 공판 중에 그는 방청석을 향해 “몸을 바쳐 나라를 구하라”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일본인 재판장이 “피고와 같이 흉행한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하고 묻자 눈을 부릅뜨고 “야만 섬나라의 불학무식한 놈아! 너는 흉(凶) 자만 알았지 의(義) 자는 모르느냐. 나는 흉행이 아니고 당당한 의행을 한 것이다.”라고 고함을 치기도 했습니다.

또 재판장이 “그러면 피고의 일에 찬성한 사람은 몇이나 되는가?”라고 물었을 때 “2천만 민족이다”라고 대답하자, 창밖에서 “옳다!”하는 소리와 함께 흥분한 방청객들이 유리창을 부수기도 했습니다. 그는 재판장에게 “야만 왜종들은 퇴청시켜라. 그리고 창밖에 나열한 한국인을 모두 입장시켜라. 그렇지 않으면 나는 너의 심문에 대답하지 않겠다”하고 호령하기도 했습니다.

 

이재명 의사 의거터
이재명 의사 의거터 - 명동성당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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