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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숨은 이야기 중

by 게으른 배트맨 2023.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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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숨은 이야기 중

 

게으른 배트맨입니다.

 

배트맨 날다

인생의 전환점을 찾아..... 한가지라도 바지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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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숨겨진 이야기 중 하나인 안기부직원과의 일화를 포스팅하고자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하면 무수히 많은 일화가 있겠지만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인 인권변호사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노무현-전 대통령
노무현 전대통령

 

인권 변호사 시절

노무현은 1978년 5월 무렵 판사를 그만두고 부산에서 변호사로 개업하였다. 이후 세무·회계 전문 변호사로 명성을 쌓았다. 당시 평범한 동료 변호사들처럼 지역의 경제인과 어울리며 요트를 즐기는 등 여유롭게 생활하였다.

그러나 민청학련사건 변론으로 본격적인 인권 변호사 활동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노무현은 나중에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라고 회고하며, 당시 학생들이 "얼마나 고문을 당하고 충격을 받았는지 처음엔 변호사인 나조차 믿으려 하질 않았다. 공포에 질린 눈으로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는 모습을 보자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라고 밝혔다.

그 밖에도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의 변론에 참여, 1984년 부산 공해문제 연구소 이사를 거쳐서 1985년에는 부산 민주시민 협의회 상임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시민운동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해 자신의 사무실에 노동법률 상담소를 열기도 했다. 또 1987년에는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부산 본부 상임 집행위원장을 맡아 6월 민주항쟁에 앞장섰다. 그 해 8월 22일의 거제도 대우조선사건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가 사망하자 이상수 등과 함께 사인 규명 작업을 하다가 9월에 제삼자 개입, 장식(葬式) 방해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었다. 1987년 11월에는 변호사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노무현-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안기부 직원을 가르치다

한편 노무현은 자신을 감시하던 안기부 직원에게 광주항쟁 비디오와 노동운동 관련 자료들을 보여주면서 강의하였다. 안기부 직원 이화춘은" 이러면 우리가 당신을 잡아가야 된다"면서 오히려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노무현은 안기부 직원들에게 민중, 노동운동 관련 비디오, 자료들을 태연히 보여주었다.

안기부에 들어와 8년 동안 미국 자료를 수집하는 내근 업무를 하던 이화춘은 85년 5월 안기부 부산지부로 파견돼 법조를 담당하게 됐다. 전임자는 "'문제 변호사'가 네 명 있는데 이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이 당신의 주요 임무"라고 말했다. 이들 네 명은 노무현, 김광일, 문재인, 이흥록이었다. 인사차 찾아간 이화춘과 점심을 같이하던 노무현은 4시간 동안 노동. 학생운동 사태 등 시국을 논했다. 8년간 미국 자료만 들여다봤던 이화춘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이에 노무현은 "당신같이 무지한 정보 요원은 처음 봤다. 당신 큰일 났다"라고 걱정했다. 이 씨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묻자 노변호사는 "교육을 받아야겠다"며 밤에 집으로 오라고 했다.

노무현이 보여준 자료들을 보고 안기부의 직원들은 당황해했다. 이화춘 등은 "이러면 내가 당신을 잡아가야 한다"며 뿌리치자 노무현은 "나중에 잡아가더라도 일단은 읽어보라"라고 했다. 

다음날 아침 노변호사가 전화를 걸어 독후감을 물었다. 이화춘은 "광주사태의 참혹상에 충격을 받아 밤을 꼬박 새웠다"라고 답했다. 이화춘과 안기부 직원들은 노무현과 문재인 변호사가 같이 운영하는 '노동문제연구소' 겸 변호사 사무실을 출입했다. 사무실은 늘 학생과 노동자로 붐볐다. 이 씨의 '기관원 의식'은 무뎌져 갔고, 그와 노무현은 서로의 애환을 챙기는 관계로 발전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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