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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 계유정난. 세조의 탄생

by 게으른 배트맨 2023.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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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 계유정난. 세조의 탄생

 

게으른 배트맨입니다.

 

배트맨 날다

인생의 전환점을 찾아..... 한가지라도 바지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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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단종

 

 

문종의 사망과 어린 단종

세종의 뒤를 이은 문종은 자신의 단명(短命)을 예견하고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남지, 우의정 김동서 등에게 자신의 사후, 어린 왕세자가 등극하였을 때 잘 보필할 것을 부탁하였다.

문종의 뒤를 이은 단종은 즉위 당시 12세의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세종과 문종의 유명(遺命)을 받든 고명대신 김종서가 조정의 인사권 및 정권과 병권을 쥐고 섭정을 하였다. 수렴청정을 통해 왕실의 중심점 역할을 해야 할 대비와 대왕대비가 부재(不在)한 상황에서, 세종의 영특한 아들들은 세종대에 각종 정치, 문화 사업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각자 만만치 않은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과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세력이 가장 강성했으며, 조정의 신료와 왕실, 심지어 환관, 나인까지도 이들의 세력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수양대군은 자신의 동생 임영대군 그리고 한명회, 유응보 등을 우군으로 두었고, 안평대군은 세종의 후궁 혜빈양씨의 세 아들과 금성대군의 지지를 받으며 수양과 대립했다. 이들이 왕권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 김종서와 그를 따르는 신하들은 또한 막강한 세력을 이루며 대군들을 견제하고 있었다.

 

 

계유정난의 시작

수양대군은 좌의정 김종서의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수하들과 함께 대기하고 있었고, 김종서는 들어가 담소를 청하나 수양대군은 핑계를 대면서 주저하였고, 미리 준비한 유인용 편지를 김종서에게 전달한다. 김종서가 편지를 달빛에 비춰 보는 순간 수양대군의 신호를 받은 종 임운이 철퇴로 김종서를 내리쳤고, 이어서 임운이 김종서의 아들 김승규와 그 동료들을 철퇴로 내리치니, 계유정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단종의 오른팔격인 김종서를 죽이고 군사를 몰고 온 수양대군은 이렇게 말했다.

전하 저는 지금 김종서를 처단하고 오는 길입니다 ‘‘

그러자 단종은 이렇게 말했다. 삼촌 나를 살려주세요

수양대군이 말하기를 그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신이 처리하지요

하고 명패를 내어 여러 재신들을 불렀다. - 연려실기술-

 

 

세조(수양대군)
세조(수양대군)

 

세조의 탄생

수양대군과 정인지 등은 단종을 압박하여 집현전으로 하여금 자신을 찬양하는 교서(敎書)를 짓게 하는 등 집권태세를 굳혀갔다. 이렇게 조정을 완전히 장악하여 1455년 마침내 왕위를 차지하게 된다.

그가 바로 수양대군으로 잘 알려진 조선의 7대 왕 세조이다. 출처 위키백과

 

단종은 왕위에 오른 지 3년 만인 1455년 윤 611일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형식적으로는 양위였지만, 숙부의 위세에 눌려 왕위를 빼앗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때 왕의 옥새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은 이가 성삼문(成三問)이었다. 양위식을 담당한 성삼문이 옥새를 부여안고 대성통곡을 하자 세조가 성삼문을 한참 동안이나 노려보았다고 전한다.

세조는 왕위에 오른 후 단종을 상왕으로 추대하고 금성대군집에 살게 했다. 말이 좋아 상왕이지 가택연금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단종의 거처에는 군사 10명을 거느린 삼군진무 2명을 배치하여 주야로 경계와 감시를 하도록 했다.

 

단종은 이후 유배를 당하고 사망하게 된다. 그 이야기는 이후에 포스팅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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