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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팔레스타인

by 게으른 배트맨 2023.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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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게으른 배트맨입니다.

 

배트맨 날다

인생의 전환점을 찾아..... 한가지라도 바지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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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자국을 기습 공격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무장단체 이슬라믹 지하드를 파괴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단 두 나라의 관계는 불구대천의 원수관계로 요약될 수 있으며 아직까지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나라로 인정하지도 않고 있다.
이스라엘은 오슬로 협정을 통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자국 내 자치정부 비슷한 존재로 인정하고 요르단 강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자치 영역으로 인정해주었지만 그것이 팔레스타인을 독립국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아니다. 팔레스타인 역시 스스로를 독립국이라 주장하고 있다.
이스라엘인 입장에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시도때도없이 로켓을 날리고 군사도발하는 골칫거리이자 안보 위협으로 인식하는 반면, 팔레스타인인들 입장에서는 이스라엘 유대인은 이스라엘 건국 초기부터 무분별한 정착촌 건설과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각종 불이익들로 터전을 빼앗거나 테러대응이라는 명분으로 무차별 공습을 자행하면서 학살하는 악마같은 존재라고 인식한다. 이 때문에 서로 간의 사이가 매우 나쁘며, 양 국민들이 서로를 해하는 악순환이 70년넘게 지속되고 있다.

출처 : 나무위키

 

 

이스라엘
이스라엘 국기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국기

 

1. 개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하 이-팔 분쟁)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둘러싼 유대인과 아랍인 간 영토 분쟁에서 시작된 것으로서, 양 세력의 민족적 · 종교적 정체성에 따른 갈등과 결부되어 있다.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치해 온 아랍인과 민족국가 건설을 추진해 온 유대인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1948년 5월에 이스라엘 건국이 선포되었다. 이를 계기로 중동전쟁이 발발했으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 상당 부분을 차지하면서 이-팔 분쟁의 근본적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중동전쟁을 거치면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팔레스타인 아랍인'(이하 팔레스타인인)을 대표하는 정치적 실체로서 부상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 이후로 온건 · 중도파 성향의 파타(Fatah) 당과 대항세력으로 부상한 하마스(Hamas) 간 갈등이 표출되었다. 여기에 '팔레스타인 이슬라믹 지하드(PIJ: Palestine Islamic Jihad)'가 하마스의 경쟁 세력으로 부상하였다. 평화 프로세스를 가동해 이-팔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이 한계를 보여주는 가운데 양측의 유혈 충돌이 반복되고 있으며, 올해 8월에는 이스라엘군과 PIJ 간 교전이 발생했다. 이러한 가운데 이스라엘 정부와 하마스가 경제적 접근법을 통해 협력적 관계를 구축할 가능성이 주목되는 상황이다.

 

2. 전개

1) 이-팔 분쟁의 역사적 기원과 이스라엘의 건국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위임통치(mandate) 하에 편입되면서 현재의 이스라엘 영토, 요르단강 서안지구(West Bank), 그리고 가자(Gaza) 지구를 포괄하는 팔레스타인(Palestine)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AD 135년경 로마에 의해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추방된 이후에는 아랍인들이 통치해 왔다. 그러다가 19세기 후반 유럽에 고조된 반유대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유대 민족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시오니즘(Zionism)이 부상하면서 유대인들의 이주가 본격화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영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건설을 지지한다고 약속한 1917년의 '벨푸어 선언(Balfour Declaration)'에 따라 가속화되었다. 하지만 영국이 당시 오스만 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랍 민족국가의 건설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유대인과 아랍인 간 영토 분쟁의 가능성을 초래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영국은 팔레스타인을 이라크 및 요르단과 함께 영국의 위임통치 하에 편입시킨 후 유대인 우대 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지역 이주가 계속되었다. 특히 나치 독일의 유대인 박해와 맞물려 유대인 이주가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유대인 비율이 높아지게 되었으며, 토지 소유권 등 경제적 문제가 얽히면서 아랍인들과 갈등이 고조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영국은 아랍인의 협력을 담보하기 위해 유대인의 이주를 제한하려는 조치를 단행하였다. 하지만 유대인의 저항을 초래하면서 유대인과 아랍인 간 분쟁을 해결하지 못했다.

제2차 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이-팔 분쟁의 문제는 유엔으로 이관되었다. 그 결과 1947년 4월에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한 특별회의가 소집되면서 '유엔 팔레스타인 특별위원회(UNSCOP)'가 설치되었다.

동 위원회는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인 구역과 유대인 구역으로 나누는 방안과 아랍인과 유대인을 포괄하는 연방 국가 창설 방안 등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동년 11월에 개최된 제2차 유엔총회의 결의 제181호를 통해 아랍인 구역과 유대인 구역 분할 방안이 채택되면서 가자(Gaza)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West Bank), 그리고 동예루살렘 등이 팔레스타인인 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팔레스타인 통일국가 수립 방안을 제시한 아랍권의 반발이 계속되는 가운데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이 선포되었다.

2) 중동전쟁과 팔레스타인 아랍인 구역의 축소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스라엘의 건국이 일방적으로 선포되자 이집트를 비롯한 7개 아랍국가가 반발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였다.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동 전쟁은 유엔의 적극적인 중재로 이스라엘과 아랍권 국가가 개별적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종결되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의 80%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1956년 10월에 발생한 제2차 중동전쟁을 통해서 다시 한번 충돌하였다.

1967년 6월 발생한 제3차 중동전쟁은 이집트 · 시리아 연합군을 중심으로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에 공격을 감행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반격을 통해 군사적 대승을 거두면서 동 전쟁은 단 6일 만에 종료되었다. 이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이 시나이반도, 골란(Golan) 고원, 가자 지구, 그리고 요르단강 서안지구 등 광범위한 지역을 점령함에 따라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가 다시 발생하였다. 제3차 중동전쟁은 이-팔 분쟁과 아랍-이스라엘 갈등 구도에 심대한 영향을 초래하였다.

제3차 중동전쟁의 패배를 설욕하려는 목적으로 이집트 · 시리아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제4차 중동전쟁이 발생하였다. 1973년 10월에 발생한 동 전쟁의 초반 국면에서는 아랍권이 우세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시리아와의 접경 지역인 골란고원에서의 승리를 발판으로 전세를 역전하면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되었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유리한 상황에서 유엔이 현상유지의 원칙을 바탕으로 개입하면서 종전되었다.

이후 미국의 중재로 1978년 9월에 '캠프 데이비드 협정(Camp David Accords)'을 체결하면서 이스라엘은 이집트에 시나이반도를 반환하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제3차 중동전쟁에서 차지한 다른 지역에 대한 점령 정책을 유지하면서 국제법적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중동전쟁의 결과 팔레스타인 아랍인 구역이 상당 부분 축소되면서 이-팔 분쟁의 근본적 원인이 되었다.

3) 이-팔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노력

아랍국가들은 팔레스타인 통일국가 수립을 주장하면서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을 자신의 사명으로 인식하였다. 하지만 미 · 소 냉전기 시기에는 이-팔 분쟁의 해결을 추동하기 위한 평화 프로세스가 가동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서 1978년 9월에 체결된 캠프 데이비드 협정은 아랍국가와 이스라엘 간 체결된 최초의 평화협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양측은 시나이반도의 반환이라는 현안을 해결하는 데 주력하였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지 반환 문제와 같이 이-팔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쟁점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은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시작하였다. 1991년 10월에 개최된 마드리드 중동평화회담이 그 출발점이었다. 동 회담은 이스라엘의 점령지 반환과 아랍국가들의 이스라엘 인정을 주요 의제로 논의하였다. 그 결과 이스라엘-아랍국가 회담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회담이라는 두 개의 대화 창구가 개설되었다. 이후 아랍국가와 이스라엘 간 개별 양자 회담이 1992년 1월부터 미국에서 진행되었다. 특히 1992년 6월 총선에서 개방적인 실용적 노선을 견지한 '이스라엘 노동당(Israeli Labor Party)'이 이념적 성향의 리쿠드(Likud) 당에 승리하면서 아랍국가들과의 대화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고대 이스라엘의 일부로 규정해 온 리쿠드당과 달리 노동당은 영토에 대한 타협에 개방적이었다. 따라서 노동당 정부는 팔레스타인과 직접 회담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양측은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의 확대에 합의했으며, 이스라엘이 예리코(Jericho)와 가자지구 등 일부 점령지역에서 철수하였다. 주목할 점은 양측이 '영토와 평화의 교환(land for peace)'이라는 평화 프로세스의 원칙에 합의했다는 점이다. 즉 이-팔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는 중동전쟁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지역의 반환이 필수적이라는 원칙에 양측이 합의한 것이다. '2 국가 해법(two-states solution)'을 확립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양측이 제3차 중동전쟁 이전의 국경선을 기준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두 개 국가를 건설하고 평화 공존한다는 원칙에 합의한 것이다.

 

이-팔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협상은 미국과 러시아, 유엔, 그리고 유럽연합(European Union)의 지원을 바탕으로 2003년 가동된 '중동평화 로드맵(Road map for Peace)'을 통해서 다시 탄력을 받게 되었다. 협상 참여자들은 1993년 오슬로 협정에서 규정된 팔레스타인 평화정착 방안을 구체화하면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건설의 로드맵을 도출하였다. 특히 미국이 '2 국가 해법'에 동의함에 따라서 동 로드맵의 추동력이 담보될 것이라는 기대가 고조되었다. 하지만 2003년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미국의 대중동 정책에서 이-팔 분쟁 해결에 관한 관심이 낮아지면서 추동력이 약해졌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더불어 이-팔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관련한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대안적 접근법은 2020년 1월에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동으로 발표한 새로운 중동평화구상을 통해 제시되었다.

동 구상의 핵심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이 기존에 건설한 유대인 정착촌 지역에 대한 주권을 인정하는 대신 이집트 국경 인근 사막지대를 팔레스타인에 양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안이 수용될 경우 팔레스타인 자치지역과 주변 아랍국들에 500억 달러 상당의 대규모 경제지원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평화에서 번영으로(Peace to Prosperity)'라는 제목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동 구상은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대한 대규모 경제지원을 바탕으로 중동평화협상을 추동하고자 하는 의도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측은 이를 즉시 거부하였으며, 역내 국가들도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재선 실패와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의 연임 실패가 맞물리면서 동 구상의 추동력이 상실되었다.

 

 

3. 전망

1993년의 오슬로 협정 체결 이후로 미 민주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2 국가 해법'을 이-팔 양측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최선의 방안으로 규정해 왔습니다. 이러한 민주당 정책 기조의 바탕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적 접근법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이-팔 양측이 동등한 권리와 이익을 가져야 한다는 당사자 동등성의 원칙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당사자 동등성의 원칙에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가 보여준 이스라엘 편향성에 비판적이며,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정착촌 건설 및 합병에 반대하고 있으며,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세적 군사작전을 중지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팔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목적으로 팔레스타인과의 외교적 연대 회복에 주력하고 있으며,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 시기 폐쇄된 예루살렘 주재 팔레스타인 영사관을 동예루살렘에 다시 개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이-팔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주력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됩니다. 미국의 대중동 정책이 이란 핵 문제와 예멘 내전 해결에 우선순위를 부여함에 따라 이-팔 분쟁의 상대적 중요성이 낮기 때문입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팔 분쟁의 점진적 해결이라는 원칙론만 강조한 채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출범 후 4개월 만에 발생한 2021년 5월의 이-팔 유혈 분쟁과 관련해서도 분쟁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칙만 표명한 채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의 관계 정상화는 중동 지역에 대한 국력의 투입을 축소하려는 미국의 지역 전략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경우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가 약해질 수 있다. 이스라엘과 관계 개선에 따른 경제적 · 정치적 이익에 더 큰 관심을 가지면서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에 관심이 낮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팔 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 의지가 낮아진 가운데 아랍 국가들의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 의지마저 약해진다면 팔레스타인의 소외감 역시 커질 것이다.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에 따른 반작용으로 팔레스타인 측이 폭력적 저항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팔 분쟁의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KIDA 세계분쟁 데이터 베이스, KIDA 세계분쟁 데이터 베이스)

 

 

불타는 팔레스타인

 

[속보] 전쟁 시작됐다…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파괴 결정(출처 : 한경)

 

[속보] 전쟁 시작됐다…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파괴 결정

[속보] 전쟁 시작됐다…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파괴 결정, 로이터·스푸트니크 보도 이스라엘 총리 "하마스·이슬라믹지하드 군사·통치 역량 파괴 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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