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메타 태그를 복사해 사이트 홈페이지의 섹션에 붙여 넣어주세요. 정조대왕의 독살설
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정조대왕의 독살설

by 게으른 배트맨 2023. 10. 8.
반응형

정조대왕의 독살설

게으른 베트맨입니다.

 

배트맨 날다

인생의 전환점을 찾아..... 한가지라도 바지런하게.....^^

betman64.tistory.com

정조의 병세

1800년(정조 24) 음력 6월 초 정조는 종기를 앓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종기는 얼굴과 등으로 번졌고 종기의 크기는 점점 커지기 시작하여 피고름이 나올 정도로 상태가 눈에 띄게 악화되었다. 좌의정 심환지와 우의정 이시수의 지휘 아래의 내의원들이 온갖 처방을 하여 치료하였고, 정조 역시 매번 처방을 묻고 확인하였다. 정조는 차도가 없자 수은 증기를 쐬는 연훈방을 받기로 하였고, 연훈방을 시술하면서 탕약도 곁들였다. 그러나 병세는 더욱 악화하여 미음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결국 혼수상태에 빠져 의식을 잃은 정조는 음력 6월 28일 유시 (양력 8월 18일 오후 5시 ~ 7시)에 창경궁 영춘헌에서 47세를 일기로 승하하였다. 정조가 죽자 어의 강명길은 죽임을 당한다.

정조가 승하하기에 앞서 양주와 장단 등 고을에서 한창 잘 자라던 벼포기가 어느 날 갑자기 하얗게 죽어 노인들이 그것을 보고 슬퍼하며 말하기를 ‘이것은 이른바 거상도(상복을 입은 벼)이다.’라고 하였는데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대상(大喪)이 났다.

 

 

정조대왕
정조대왕

 

정조 사후 독살설

정조 사후 독살설이 제기되었다. 그 근거는 연훈방을 써서 수은에 중독되어 죽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 방법을 주선한 심환지와 이시수가 노론의 벽파라는 것과 정순왕후가 정조를 독대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조가 사망하였다는 것이 이러한 독살설을 부추겼다.

남인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정황 때문에 정조가 독살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파다하였다. 정약용은 솔피시를 지어 이러한 독살설을 은유적으로 암시했다. 그 해 8월 18일 경상도 안동의 남인 출신 거족 여현 장현광의 후손 장현경과 그의 친족인 장시경 3형제 등은 정조의 독살을 주장하며 원수를 갚겠다고 거병하였다가 실패하고 일족이 처형당하였다.

정약용은 여성 유배인이 현지에서 성희롱을 당하는 일을 개탄한 〈고금도장씨녀자사〉를 적으면서 심환지가 심인을 추천하여 정조를 독살하였다는 의심을 남겼다.

 

현대의학이 밝히는 정조 독살설

경희대교수팀 처방 등 분석 사인을 두고 논란을 낳고 있는 조선조 정조대왕의 죽음은 독살이 아니라 패혈증과 뇌졸중(중풍)이 직접적인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제시다. 생전에 정조가 겪었던 병증과 처방, 실록 등을 근거로 한의학적 관점에서 사망 원인이 제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사상체질과 김달래·김선형 교수팀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바탕으로 정조의 발병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질환의 증상과 처방, 어의와 정조 본인의 주장 등을 검토해 이 같은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실록과 승정원일기의 진료기록이 모두 정조의 질환에 대해 같은 맥락의 설명을 하고 있으며, 특히 승정원일기에는 실록에 없는 기본 증세와 처방 등에 대한 견해가 담겨 있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를 근거로 정조의 사망 원인을 2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급성 감염성 질환이나 패혈증 가능성이다. 김 교수는 “요즘도 급성 감염성질환이나 패혈증은 치료시기를 놓치면 단시간에 사망에 이른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이 추정한 또 다른 사망 원인은 뇌혈관 질환. 정조는 실제로 혈압이 높거나 뇌와 심혈관계 질환을 가졌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