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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십자가형

by 게으른 배트맨 2023.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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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십자가형 

예수 십자가형과 본디오 발라도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us)(Pontius Pilatus)는 로마 제국 제2대 황제 티베리우스 시대의 군인으로, AD 26년부터 36년까지 유다이아 속주의 총독(프라이펙투스 유다이아, Praefectus Iudaea)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역사적으로 예수의 십자가형으로 유명하며 성경과 일부 역사 기록에 등장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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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오 빌라도 관련 정보

유다이아 속주 총독 : 필라투스는 유다이아 속주의 로마 제국 총독으로 임명되어 예루살렘을 비롯한 유다 중부 지방을 다스렸습니다.

예수의 십자가형 :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인 지도자 예수를 유다인들의 요청에 따라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명령한 인물로 유명합니다. 이 사건은 기독교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역사 기록의 한계 : 로마 역사 기록에서는 본디오 빌라도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성경 외의 로마의 기록은 본디오 빌라도에  대한 언급이 제한적이며, 예수의 십자가 형사로서의 역할만 언급됩니다.

평가와 평론 : 유대인 역사가인 필로는 그는 "거칠고 악의가 있으며 잔인한 인물"로 묘사하였으며,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그가 유대인들을 적대적으로 대우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유대인과의 갈등 :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인들과의 갈등을 일으켰으며, 유대교 성전에 로마식 신상을 설치한 일과 성전 자금을 사용하여 로마식 수도관을 건설하는 정책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로 인해 유대인들과의 갈등과 반발이 일어났습니다.

 

 

본디오 빌라도
본디오 빌라도

 

본디오 빌라도와 유대인들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관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총독으로 부임한 즉시 유대인들에게 반감을 샀으며, 통치 시기에도 유대인의 풍속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유대인의 유월절 기간에는 군기나 장비에 있는 황제의 형상을 가려야 했지만, 빌라도는 이 규칙을 의도적으로 어기고 무시했습니다.

더구나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두가 이인들로부터 성전자금을 상납받았지만, 이 자금을 성전에 쓰는 대신 수로 공사에 사용했고, 이로써 유대인들의 풍속을 무시한 행동을 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유대인의 관행에 따르면 성전자금은 고아나 과부들의 구제 자금으로 사용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이를 착복하고 나서 다시 세금을 걷어들였습니다.

이처럼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정직하지 않고 융통성이 없었으며, 예수의 사형 집행 과정에서도 어떤 주저함이나 망설임조차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경에서의 묘사

진리가 무엇인가?
요한의 복음서 18장 38절, 공동번역성서
예수를 심문하면서 한 말이다. 이에 예수는 묵묵부답으로 대응한다. 그다음 빌라도는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하였다."라고 말한다.
자, 이 사람이다.
요한의 복음서 19장 5절, 공동번역성서
매질 후 가시나무관과 자주색 (황제의 용포) 옷을 입혀 내보낸 후 다시 한번 유대인들에게 예수의 무죄를 알리면서 호소하는 말이다

십자가
십자가

 

예수와 본디오 빌라도

예수는 본래 신성모독죄로 기소되어 유대 지방 최고 의회(성전)에 출두했는데, 현지인 의회에서는 사형을 내릴 권한이 없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여사제와 간통한 정도가 아닌 바에야 신성모독으로 사형을 선고하는 일이 드물어서 성직자들은 예수를 국가반역죄로 몰아 총독부로 보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빌라도는 예수의 여러 차례 무죄를 확인했으나 끝내 대제사장 카야파 파벌들에게 떠밀려 예수의 사형집행을 방관했다고 합니다.

 

기독교의 빌라도

그는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그냥 흔하디 흔한 관료 중 하나였다. 실제 이 당시의 빌라도와 비슷한 급의 인물가운데서 현대까지 알려진 인물은 거의 없습니다. 이 시대의 인물들 가운데 현대까지 인지도가 높으려면 황제 아니면 뭔가 정말로 비범한 군사적·문화적 업적을 세운 사람 정도. 아무리 황제라도 별 업적이 없으면 인지도가 낮은 경우가 많은데, 지방 관료 정도 지위로 현대까지 이름을 알린 건 상대가 다름 아닌 예수였다는 점 하나 덕분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예수가 누군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는 점에서 예수를 죽였다는 오명은 좀 억울한 측면이 있습니다. 당시 로마의 지배를 받는 지역들 가운데 예수와 같은 종교 지도자는 흔했고, 빌라도 입장에서는 그저 민중소요나 일으키는 예수를 지방 토호들 여론에 따라 처형한 것입니다. 당시 민중소요는 드물지 않게 일으났으며, 이에 대한 진압과 지도자의 처형도 비일비재했습니다. 그 상대가 하필이면 후대에 세계 최대의 신자를 거느리게 된 종교의 신앙 대상이 된 예수였기 때문에, 2천 년이 넘는 지금까지 이름(어떤 면에서는 악명)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출처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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